저희집도 그리 잘 살지는 못했던것 같아요. 제 기억으로는 그당시 택시들이 스텔라였습니다.
그때 저희 아버지가 구입한 포니는 폭삭삭은 포니2 픽업 모델이었지요.
짐을 싫어야 하기 때문에 뒷부분은 트럭처럼 화물칸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수동 변속 기어봉이 핸들 옆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좌석이 3인승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저와 동생 셋이 낚시를 떠날 수 있었죠.
벌써 한 20년이 넘은 과거군요…
충주호의 상류 즈음… 그 억수같이 비가오던 날 밤 우리는 수면 5미터위 정도 비탈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잤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추울까봐 버너에 붕어 백숙을 계속 끓이셨죠. 또 등에는 물이 차올라서 아버지는 배낭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서 우리가 잘 수 있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잠시 잠이 들었다 깨보니 아버지가 안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찾아 플래시를 들고 나섯죠… 한 10분 정도 빗속을 걸었을 때 저 앞에서 아버지가 동생은 어쩌고 날 찾으러 오느냐 하고 화를 내시더군요. 아차 하고 텐트로 돌아와 보니 동생이 처절하게 울고 있었습니다. 새벽동안 아버지는 물에 잠려 빙빙 돌며 떠내려는 포니를 건지느라 고생하셨답니다.
다음날 아침… 텐트아래 1미터 정도 까지 물이 찼더군요(헉스). 낚싯대들은 둥둥 떠내려가고… 다음날 아침 진흙때문에 바퀴가 헛돌아 언덕을 못 오르는 포니의 짐칸에 우리는 돌덩어리들을 채워 넣느라 땀을 많이 흘렸지요. 한편 어머니는 새벽에 우리를 찾아 택시를 타고 막연히 충주호 쪽으로 달렸다네요…. 근데…. 밤새 내린 비로 2차선 도로에 집채만한 바위가 떨어져 더이상 갈수가 없었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무슨 사고를 당하고 세상이 끝나는 줄 아셨다네요.
물론 돌아오던 우리도 그 바위를 보았지요… 그 맞은 편에 어머니가 울고계신줄은 꿈에도 모르고요… 휴대폰이 있었더라면 걱정이 없었을 테지만…. 우리는 가까운 길로 못오고 결국 충주 시내를 돌아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죠.
집에와서 저는 밤새 먹은 붕어 백숙 때문인지 하루종일 설사만 했죠.
^^ 하늘색 포니와 절묘하게 어울리는 디자인이네요~
사실 우리 아버지의 첫 차는 포니2 픽업 은색 모델이었지요. 일을 하시기 위해 중고로 구입 하셨던…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그 차를 타고 1박2일로 낚시를 떠났던 날이 기억나네요.
그날 밤 비가 억수로 많이 와서 결국 우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집으로 돌아왔었지요.
맨발로 마당까지 뛰어나오시던 어머니 많이 놀라셨었죠.
한글로 포니라고 적혀있으니 상당히 멋진듯해요.
한글은 최초로 디자인된 문자라고 하네요.
저희집도 그리 잘 살지는 못했던것 같아요. 제 기억으로는 그당시 택시들이 스텔라였습니다.
그때 저희 아버지가 구입한 포니는 폭삭삭은 포니2 픽업 모델이었지요.
짐을 싫어야 하기 때문에 뒷부분은 트럭처럼 화물칸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수동 변속 기어봉이 핸들 옆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좌석이 3인승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저와 동생 셋이 낚시를 떠날 수 있었죠.
벌써 한 20년이 넘은 과거군요…
충주호의 상류 즈음… 그 억수같이 비가오던 날 밤 우리는 수면 5미터위 정도 비탈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잤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추울까봐 버너에 붕어 백숙을 계속 끓이셨죠. 또 등에는 물이 차올라서 아버지는 배낭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서 우리가 잘 수 있게 준비해 주셨습니다.
잠시 잠이 들었다 깨보니 아버지가 안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찾아 플래시를 들고 나섯죠… 한 10분 정도 빗속을 걸었을 때 저 앞에서 아버지가 동생은 어쩌고 날 찾으러 오느냐 하고 화를 내시더군요. 아차 하고 텐트로 돌아와 보니 동생이 처절하게 울고 있었습니다. 새벽동안 아버지는 물에 잠려 빙빙 돌며 떠내려는 포니를 건지느라 고생하셨답니다.
다음날 아침… 텐트아래 1미터 정도 까지 물이 찼더군요(헉스). 낚싯대들은 둥둥 떠내려가고… 다음날 아침 진흙때문에 바퀴가 헛돌아 언덕을 못 오르는 포니의 짐칸에 우리는 돌덩어리들을 채워 넣느라 땀을 많이 흘렸지요. 한편 어머니는 새벽에 우리를 찾아 택시를 타고 막연히 충주호 쪽으로 달렸다네요…. 근데…. 밤새 내린 비로 2차선 도로에 집채만한 바위가 떨어져 더이상 갈수가 없었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무슨 사고를 당하고 세상이 끝나는 줄 아셨다네요.
물론 돌아오던 우리도 그 바위를 보았지요… 그 맞은 편에 어머니가 울고계신줄은 꿈에도 모르고요… 휴대폰이 있었더라면 걱정이 없었을 테지만…. 우리는 가까운 길로 못오고 결국 충주 시내를 돌아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죠.
집에와서 저는 밤새 먹은 붕어 백숙 때문인지 하루종일 설사만 했죠.
그래도 죽을 고비를 넘겼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풋 하고 웃음이 나옵니다.
잠시 감상에 젖어 긴 글을 남기네요… ^^
추억이란 참으로 좋은 것 같아요. 그 당시엔 정말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이렇게 시간이 지나서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으니깐요. 요즘엔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가는지 추억만들기도 힘들지만…
저도 작은 물고기들 머리채 고추장에 찍어먹는거 보고 놀랬던 기억이 있네요.
이제 날씨가 더 추워지면 빙어를 그래 잡수시는 분들이 꽤 있을듯 보이네요^^
피라지… 저는 피라미라고 알고 있었죠 깨끗한 물에만 산다던데 요즘에는 찾아 보기 힘든 물고기가 되었네요.
어른이 된 지금은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느라 개울이며 자연이며… 모두 추억속에서만 아련합니다.
그 포니를 탔던 1인 추가….
수동 변속기였고..최대 4단까지만 있었음…
거기다가 브레이크가 제대로 듣질 않아…신호등 앞에서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사용해서 섰다는….
^^ 저도 픽업 포니~ 를 타봤는데…이따시만한 돌이 길을 막고 있었던 기억이…